[하늘 숫자 해부] 현대차는 왜 105층을 포기했나: 초고층 빌딩의 비용 계산서

안녕하세요. 생활 속 경제 이야기를 숫자로 쉽게 풀어드리는 템휴입니다.

2014년 9월 18일, 서울 삼성동 옛 한국전력 부지의 새 주인이 정해졌습니다. 현대차그룹이 써 낸 값은 10조 5,500억 원. 감정가 3조 3,346억 원의 3.2배였습니다. 부지 면적이 7만 9,342㎡이니 3.3㎡(1평)당 약 4억 4,000만 원을 낸 셈입니다. 시장은 놀랐고, 현대차는 이 땅에 국내 최고층 빌딩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몇 차례 다듬어진 계획은 2019년 11월 건축허가 때 105층, 높이 569m로 정해졌습니다. 롯데월드타워(555m)보다 14m 높은 높이였습니다.

땅을 산 지 12년 가까이 지난 올해 4월,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는 바뀐 계획을 통과시켰습니다. 105층 1개 동이 아니라 49층 3개 동, 가장 높은 동이 약 242m입니다. 높이로는 57%가 줄었습니다. 10조 원 넘게 주고 산 땅에서 왜 국내 최고층의 꿈을 접었을까요. 이 질문을 따라가면 초고층 빌딩이라는 물건의 비용 계산서가 보입니다.

1. 569m에서 242m로: GBC 12년 연대기

시점내용
2014년 9월옛 한전 부지 10조 5,500억 원에 낙찰(감정가의 3.2배)
2015년최고 층수를 115층에서 105층으로 조정
2019년 11월105층(569m) 건축허가
2020년 4월국방부·서울시와 군 작전 영향 해소 이행합의서 체결
2020년 5월착공
2024년 2월55층(약 242m) 2개 동으로 바꾸는 변경안 제출
2024년 5월서울시가 랜드마크 계획을 바꾸려면 공공기여도 다시 협상해야 한다며 수용 거부
2024년 7월현대차, 55층 변경안 철회
2025년 2월~12월새 변경안으로 추가 협상
2026년 4월49층(약 242m) 3개 동 지구단위계획 변경안 통과
2031년 말준공 목표

출처: 데일리안(2014.9.18), 서울신문(2019.11.27, 2026.4.9), 뉴시스(2020.4.28, 2026.1.5), 한국경제(2024.5.2), 연합(2024.7.8), 헤럴드경제(2026.1.5), 비즈워치(2026.1.6). 높이는 보도된 계획 기준입니다. 2026년 4월 통과는 지구단위계획 단계이고, 건축 변경 심의와 영향평가는 그 뒤 절차입니다.

현대차가 밝힌 변경 이유는 세 갈래로 정리됩니다. 공사비 급등, 군 작전 제한 사항, 그리고 대내외 경영 환경의 변화입니다. 2024년 변경안을 낼 때도 최고 층수를 절반 정도로 낮추면 공사비를 대폭 줄이고 공사 기간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습니다. 보도된 최종안의 공사비는 5조 2,400억 원입니다. 그렇다면 높이가 왜 그렇게 비싼지, 하나씩 뜯어보겠습니다.

2. 높이가 비싼 이유 ①: 80층은 20층보다 면적당 2배

층수를 두 배로 올리면 공사비도 두 배가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더 빨리 오릅니다. 미국 경제학자 제이슨 바가 2001년 이후 맨해튼에서 지어진 고층 빌딩 28개의 공사비를 분석한 결과가 이를 잘 보여 줍니다.

건물 층수면적당 평균 공사비(물가 조정)㎡로 환산
20층제곱피트당 약 400달러㎡당 약 4,300달러
80층제곱피트당 약 800달러㎡당 약 8,600달러

출처: Jason M. Barr, 블로그 Building the Skyline(2017.11.19), 2001년 이후 맨해튼 고층 빌딩 프로젝트 28개의 물가 조정 공사비 추세. ㎡ 환산은 템휴 계산.

이 표본에서는 높이가 4배일 때 같은 면적을 짓는 데 드는 돈이 약 2배였습니다. 1층을 더 쌓을 때마다 그 층만 비싸지는 것이 아니라, 아래층 전체가 그 무게와 흔들림을 버티도록 더 튼튼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용을 끌어올리는 요인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요인왜 비싸지나숫자로 보면
바람높을수록 바람이 세고, 건물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야 함타이베이 101은 87~92층에 660톤짜리 추를 매달아 흔들림을 상쇄
무게위층 무게를 아래층과 기초가 모두 받아야 함롯데월드타워 무게 75만 톤, 철골 5만 톤(에펠탑 약 7개 분량)
엘리베이터층이 늘수록 승강기와 계단이 차지하는 면적이 늘어 빌려줄 면적이 줄어듦롯데월드타워 승강기 61대
시간공사가 길어질수록 인건비와 이자 부담이 쌓임롯데월드타워 착공부터 사용승인까지 2,280일, 연인원 500만 명 이상

출처: 기네스 세계기록(타이베이 101 동조질량감쇠기), 이투데이(2017.2.9, 롯데월드타워 사용승인), 한국소방산업기술원 웹진(2019.12). 롯데월드타워는 2010년 11월 착공해 2017년 2월 사용승인을 받고 4월에 개장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제는 특히 흥미롭습니다. 빌딩이 높아질수록 위층까지 사람을 실어 나를 승강기가 더 많이 필요하고, 그 승강기 통로는 아래층 바닥을 모두 관통합니다. 높이 지을수록 정작 사무실로 빌려줄 수 있는 면적의 비율은 줄어드는 역설이 생깁니다. 돈을 더 들여 지었는데 쓸 수 있는 공간은 상대적으로 작아지는 셈입니다.

3. 높이가 비싼 이유 ②: 법이 요구하는 것들

한국 건축법 시행령은 50층 이상 또는 높이 200m 이상인 건물을 '초고층 건축물'로 따로 분류합니다. 이 선을 넘으면 의무가 크게 늘어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피난안전구역입니다. 불이 나거나 지진이 났을 때 1층까지 내려가지 못한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최대 30개 층마다 한 곳 이상 마련해야 하는 대피 공간입니다. 그 면적만큼은 사무실로 빌려줄 수 없습니다. 롯데월드타워의 피난안전구역 5곳을 합치면 약 3,000㎡입니다.

롯데월드타워 방재 설비규모
피난안전구역5곳(22·40·60·83·102층)
피난안전구역 수용 인원6,069명
비상시 피난용으로 전환되는 승강기19대(전체 61대 중)
스프링클러 헤드16만 개 이상
화재 감지기3만 개
구조 안전 계측기약 500개

출처: 한국소방산업기술원 웹진(2019.12), 건축법 시행령 제2조·제34조(초고층 건축물 정의, 피난안전구역 설치 기준).

여기에 '초고층 및 지하연계 복합건축물 재난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더해집니다. 사전 재난영향성 검토, 총괄재난관리자 지정, 종합방재실 운영 등이 의무입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업계는 초고층이 되면 지진·해일 영향 검토를 비롯해 40여 가지 심의와 평가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숫자 하나를 짚고 가겠습니다. GBC 최종안은 49층이지만 높이가 약 242m입니다. 법의 기준은 "50층 이상 또는 200m 이상"이므로, 49층이라도 200m를 넘으면 여전히 법적 초고층입니다. 사무용 빌딩은 한 층 높이가 높기 때문입니다. 전체 높이를 층수로 나누면 GBC 최종안은 층당 약 4.9m, 롯데월드타워는 약 4.5m(꼭대기 장식부 포함)로, 보통 3m 안팎인 아파트 한 층보다 훨씬 높습니다. 실제로 GBC는 오피스와 로비 층고를 높이면서 54층안이 49층으로 줄었는데, 높이 242m는 그대로였습니다. 층수만 보고 "초고층 규제를 피했다"고 읽으면 틀린 셈입니다.

4. 하늘을 쓰는 값: 보이지 않는 비용

초고층 빌딩은 땅값과 공사비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늘도 비용입니다. GBC가 105층으로 올라가면 수도권 방공 레이더의 탐지 범위에 그림자가 생긴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2020년 4월 국방부·서울시·현대차가 맺은 이행합의서에 따라 현대차는 공군의 새 레이더 구매와 유지, 시설 공사와 운용 비용, 헬기 비행로 변경에 따른 민원 대응 비용까지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롯데월드타워도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성남 서울공항에서 5~6km 거리라 공군 비행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롯데가 활주로 방향 조정과 착륙 유도 장비(PAR, VOR/DME) 설치 비용을 부담했습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비용 청구서에는 '건물'이 아니라 '하늘'에 대한 항목이 붙습니다.

5. 아무도 쓰지 못하는 높이: 허영 높이 244m

그렇다면 그 비싼 높이는 전부 쓰이는 공간일까요.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는 건물 꼭대기에서 사람이 머물 수 있는 마지막 층 위로 솟은 첨탑과 장식 부분을 '허영 높이(vanity height)'라고 부릅니다. 사람이 쓸 수 없고, 오직 높이 순위를 위해 존재하는 높이입니다.

구분허영 높이전체 높이 대비
부르즈 할리파(두바이, 828m)약 244m약 29%
부르즈 알 아랍(두바이, 321m)124m39%(2013년 조사 초고층 중 최고)
세계 100대 고층 빌딩 평균-12.6%
메가톨(600m 이상) 4개 평균-20.2%

출처: CTBUH 허영 높이 조사(2013, 부르즈 할리파·부르즈 알 아랍), Helal·Trabucco·Savovic, Journal of Cleaner Production(2024, CTBUH 2023년 9월 데이터로 계산한 100대 빌딩·메가톨 평균). 메가톨은 높이 600m 이상 빌딩으로, 조사 시점에 4개였습니다.

부르즈 할리파 꼭대기의 '쓸 수 없는 높이' 244m는 GBC 최종안의 49층 타워 한 동(약 242m)과 맞먹습니다. 세계 최고층 경쟁에서 마지막 수십 미터는 사무실이 아니라 순위를 사는 돈이라는 뜻입니다.

6. 그래도 높이 짓는 이유: 높이 프리미엄

그런데도 사람들은 높이 짓습니다. 높은 층일수록 비싸게 팔리기 때문입니다. 제이슨 바가 뉴욕 센트럴파크 타워의 집별 예상 분양 수입을 분석했더니, 집 크기와 조건을 같게 놓고도 한 층 올라갈 때마다 제곱피트당 약 34달러씩 값이 올랐습니다. 꼭대기 층의 전망, 그리고 남들보다 위에 산다는 상징이 가격에 붙는 것입니다. 기업 사옥이라면 그 상징이 곧 광고입니다.

결국 초고층 빌딩의 높이는 이 두 줄의 싸움입니다. 한 층 더 쌓을 때 늘어나는 비용과, 한 층 더 높아질 때 얻는 값어치. 주거용 고급 타워는 꼭대기 층이 비싸게 팔리니 높이 올릴 이유가 있지만, 자기가 쓸 사무실을 짓는 기업에게 100층 위의 높이는 대부분 상징 값입니다. 공사비가 뛰고 경영 환경이 바뀌자 현대차는 그 상징 값을 덜어 내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템휴 해석 | 마지막 50층은 면적이 아니라 상징을 사는 돈

105층과 49층의 차이는 56개 층이지만, 그만큼 면적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용적률 800%는 그대로 두고 같은 바닥 면적을 3개 동에 나눠 담았기 때문입니다. 줄어든 것은 높이이고, 높이에는 따로 값이 붙습니다. 높이가 올라갈수록 면적당 공사비는 더 빠르게 오르고, 바람과 무게를 버틸 구조, 승강기 통로, 피난안전구역, 레이더 같은 '하늘 값'이 차례로 붙습니다. 그 비용을 정당화하는 것은 결국 상징의 가치입니다. 국내 최고층이라는 타이틀이 그 값을 할 때는 105층이 맞는 답이고, 공사비가 오르고 실리가 중요해지면 49층이 맞는 답이 됩니다. 현대차의 선택은 그 저울이 기운 방향을 보여 줍니다.

템휴의 정리

오늘의 숫자: 10조 5,500억 원짜리 땅(감정가의 3.2배)에 569m·105층으로 건축허가까지 받았다가, 약 242m·49층 3개 동으로 변경(2026년 4월 지구단위계획 통과). 높이 57% 감소, 준공 목표 2031년 말.

높이의 공사비: 맨해튼 28개 빌딩을 보면 80층 빌딩의 면적당 공사비는 20층의 약 2배였습니다. 바람, 무게, 승강기, 공사 기간이 비용을 밀어 올립니다.

법의 문턱: 50층 이상 또는 200m 이상이면 초고층. 최대 30개 층마다 피난안전구역이 필요하고, GBC 49층도 242m라 여전히 법적 초고층입니다.

하늘 값: GBC는 공군 레이더 구매·운용 비용을, 롯데월드타워는 서울공항 활주로 방향 조정 비용을 부담했습니다.

허영 높이: 부르즈 할리파 꼭대기의 쓸 수 없는 높이만 244m로, GBC 49층 타워 한 동과 맞먹습니다.

초고층 빌딩을 올려다볼 때 우리는 높이를 봅니다. 하지만 그 빌딩을 짓는 사람은 높이가 아니라 층마다 붙는 가격표를 봅니다. 105층에서 49층으로 내려온 숫자는 꿈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그 가격표를 다시 읽은 결과입니다.

이상, 템휴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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