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스) 주식 투자는 미인대회 투표와 같다: 대중 심리

"주식은 회사의 진짜 가치를 분석해서 사는 게 아니라고?! 남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거시경제학의 황제이자, 책상물림 경제학자들을 비웃으며 월스트리트의 개미들을 조종해 엄청난 주식 부자가 된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그 유명한 '미인대회 이론'입니다.

김 대리: "투자는 과학이다!! 매출 잘 나오고 빚 없는 진짜 저평가 우량주를 철저히 분석해서 사면 무조건 오를 수밖에 없지!! 가치 투자 가즈아!!"

김 대리: "끄아아악!! 내 완벽한 분석이 왜 안 먹혀!! 매출이 100배 높은 내 주식은 떡락하는데, 왜 파리 날리는 엉터리 테마주가 상한가를 치는 거냐고!!"

케인스: "어리석군. 당신이 백날 기업의 장부를 뜯어본들 무슨 소용인가? 당신 혼자 '좋은 회사'라고 외쳐봐야, 시장에 있는 수만 명의 바보들이 비싸게 안 사주면 주가는 절대 오르지 않아."

케인스: "어이 초보 개미 양반. 주식은 기업 가치가 아니라 이 신문사 '미인대회 투표'랑 똑같은 거야. 여기서 1등 미녀를 맞힌 사람에게 상금을 준다면 넌 누굴 찍을 테야?"

김 대리: "당연히 제 취향에 제일 참하고 예쁘게 생긴 이 여자죠! 객관적으로 눈코입 비율이 완벽하잖아요!"

케인스: "멍청하긴! 네 눈에 예쁜 여자를 찍으면 넌 평생 상금을 못 타! 우승 상금을 타려면 내 눈에 예쁜 여자가 아니라 '대다수의 군중(남들)이 예쁘다고 생각할 것 같은 여자'를 골라야 해."

케인스: "진짜 승리자는 한 번 더 꼬아서 생각한다. '남들은 다른 남들이 누굴 고를 거라고 생각할까?' 그 대중의 심리와 편견을 한발 앞서 맞히는 자가 주식판의 돈을 싹쓸이하는 거다!"

템휴: "이것이 학자 중 유일하게 주식으로 떼돈을 번 케인스의 '미인대회 이론'입니다. 단기적인 주식 시장의 가격은 이성적인 기업 가치가 아니라, 대중의 심리와 유행이 만들어내는 지독한 눈치 게임일 뿐이라는 겁니다."

김 대리: "그래서 백날 기본기 따져가며 샀던 내 우량주는 제자리걸음이고, 광기에 휩싸인 작전주만 날아갔던 거구나! 재무제표 다 필요 없어!! 지금 당장 대중들이 제일 환장하는 주식이 대체 뭐야!!"

템휴 (내레이션): "다만 명심하십시오. 미인대회의 함정은, 남들이 다 찍은 걸 '확인'하고 뒤늦게 따라가면 이미 투표가 끝나 고점에 물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군중보다 한발 먼저 예측하고 거품이 터지기 전 빠져나오는 '타짜'가 아니라면, 그 눈치 게임의 끝은 파멸입니다."

타짜 경제학자, 케인스의 대반전 인생

거시경제학을 만들고 ‘수정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 교과서에서는 점잖은 학자로 나오지만, 실제 그는 주식과 외환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돈을 굴리던 실전 투자자였습니다. 그것도 꽤 거칠게요. 매일 아침 침대에 누운 채로 신문과 시세표를 훑고 전화로 주문을 넣은 뒤에야 일어났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러시아 발레리나와 결혼한 것도, 예술가 친구들과 어울린 것도 그답습니다. 한마디로 교수 같지 않은 교수였죠.

미인대회에서 주식 시장을 보다

케인스의 가장 유명한 비유는 1930년대 영국 신문의 미인 투표 이벤트입니다. 신문에 여성 사진 100장을 싣고, 독자들이 가장 많은 표를 받을 사람을 맞히면 상금을 주는 식이었죠. 여기서 그는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세 단계로 나눕니다.

하수는 자기 눈에 제일 예쁜 사람을 고릅니다. 주식으로 치면 남들이야 어떻든 재무제표만 파고들며 “이 회사 진짜 좋은데 왜 안 오르지?”라고 답답해하는 사람입니다. 중수는 내 취향을 버리고 “대중은 누굴 좋아할까”를 고민합니다. 그리고 고수는 한 번 더 꼬아서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남들이 누굴 고를 거라고 예상할까?”

결국 케인스가 한 말은 이겁니다. 내가 좋아하는 주식이 아니라, 남들이 곧 좋아할 것 같은 주식을 한발 먼저 사야 돈을 번다. 요즘 밈 코인이나 테마주가 이유도 없이 폭등하는 걸 보면, 90년 전 이 비유가 지금도 그대로 들어맞는 게 좀 무섭습니다.

그 천재도 깡통을 찼다

이렇게 사람 심리를 읽으며 돈을 벌던 케인스에게도 흑역사가 있습니다. 사실 두 번이나요. 1920년에는 외환 투기로 거의 전 재산을 날려 친구들 도움으로 겨우 버텼고, 1929년 대공황 때는 그 천재적인 감각으로도 시장 붕괴의 타이밍을 맞히지 못해 재산의 대부분을 다시 잃었습니다.

두 번 깨지고 나서 그는 결론을 내립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대중의 광기와 단기 타이밍을 맞히는 건 결국 도박이다.” 그러고는 눈치 게임을 완전히 접고, 잘 아는 소수의 좋은 기업을 골라 오래 들고 가는 ‘집중 가치투자’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증권분석』을 낸 게 1934년이니, 케인스는 거의 같은 시기에 혼자서 같은 답에 도달한 셈입니다.

그리고 진짜 부자가 됐다

철학을 바꾼 뒤 케인스는 죽을 때까지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의 기금을 운용했습니다. 대공황과 2차 대전을 통과하면서도 연평균 두 자릿수 수익률을 냈고, 같은 기간 영국 주식시장 평균을 큰 폭으로 앞질렀습니다. 개인 재산도 현재 가치로 수백억 원대까지 불어난 채 생을 마감했죠.

단타로 흥했다가 두 번 파산하고, 결국 장기 투자로 부활한 사람. 케인스의 인생이 오늘날 개인 투자자에게 주는 교훈은 단순합니다. 시장 심리를 읽는 눈은 필요하지만, 그 눈만 믿고 베팅하면 천재도 깡통을 찬다는 것. 본인이 직접 두 번 증명했으니, 이보다 확실한 증거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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