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전 세계의 수많은 PC 게이머들은 무려 10년 만에 정식 넘버링 리부트 작품으로 귀환하는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 장르의 절대 제왕, '심시티(SimCity, 통칭 심시티 5)'의 출시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989년 윌 라이트(Will Wright)와 개발사 맥시스(Maxis)가 첫선을 보인 이래, 심시티는 자신만의 방구석에서 도로를 깔고 세율을 조정하며 거대한 메트로폴리스를 가꾸는 '오프라인 샌드박스 싱글 플레이'의 바이블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맥시스의 모회사인 거대 게임 퍼블리셔 일렉트로닉 아츠(Electronic Arts, 이하 EA)의 경영진은 이 역사적인 신작을 출시하면서 게이머들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기괴하고도 강압적인 정책 하나를 발표합니다. 바로 게임을 혼자서 플레이하더라도 무조건 24시간 내내 인터넷을 통해 EA의 중앙 서버에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어야만 게임이 작동하는 '상시 온라인 연결(Always-Online DRM)' 시스템을 강제한 것입니다. 즉, 인터넷이 잠시라도 끊기거나 본사 서버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내 컴퓨터에 설치한 싱글 플레이 게임조차 아예 실행할 수 없도록 원천 봉쇄해 버린 것입니다.
(2013년 미국 게임사 EA 본사. 오만한 임원이 싱글 플레이 게임인 '심시티' 패키지 박스에 거대한 쇠사슬과 자물쇠(DRM)를 채우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불법복제 놈들에게 한 푼도 뺏길 수 없다! 혼자 하는 싱글 게임이라도 무조건 24시간 우리 서버에 접속해야만 돌아가게 만들어!"

(개발진이 서버 과부하를 우려하지만, 임원은 거만하게 손사래를 치며 서버 증설 예산을 깎아버린다.)
"유저들에겐 '초고도 클라우드 연산 때문'이라고 구라를 쳐! 그리고 서버 증설 비용은 아까우니까 대충 최소한으로만 세팅해!"

(2013년 3월 발매 당일. 정품 유저가 60달러를 주고 산 심시티 정품 패키지를 들고 설레는 표정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실행한다.)
"드디어 10년 만에 나온 심시티 신작! 내 돈 60달러 주고 정품으로 샀으니 주말 내내 나만의 도시를 만들어봐야지!"

(전 세계 수십만 명의 정품 유저가 동시에 접속하자, EA의 빈약한 서버실 기계들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시뻘건 불길을 뿜으며 대폭발한다.)
"(비상 경보음) 삐비빅!! 전 세계 동시 접속자 폭주! 서버 용량 초과!! 메인 서버가 전부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방구석의 정품 유저가 모니터에 뜬 '서버 접속 불가 - 대기 시간 4시간' 경고창을 보며 핏대를 세우고 극대노한다.)
"아니, 멀티도 아니고 나 혼자 방에서 하는 싱글 게임인데 서버가 터졌다고 게임을 아예 못 한다고?! 날강도 놈들아 내 돈 내놔!!"

(분노한 게이머들의 환불 폭동이 일어나고 아마존에서 판매가 중단된다. 임원은 쏟아지는 별점 1점 테러와 '미국 최악의 기업' 트로피 앞에서 절규한다.)
"으아아악! 전 세계에서 환불 폭동이 일어났어! 아마존에서 아예 우리 게임을 불량품이라며 판매 중지시켰다고?!!"

"빈대 한 마리 잡겠다고 초가삼간은 물론이고, 25년 된 명작 프랜차이즈의 숨통까지 끊어버린 전설적인 '심시티 DRM 자폭 사태'죠."

"아이러니하게도 해커들은 불과 며칠 만에 코드를 뚫어 오프라인으로 쾌적하게 즐겼습니다. 오직 돈 내고 산 '정품 호구'들만 감옥에 갇혀 고문당한 셈이죠."

"행동경제학의 '손실 회피 편향(Loss Aversion)'. 애초에 지갑을 열 리 없는 복제 유저라는 가상의 손실에 집착하다가, 진짜 돈을 내는 충성 고객의 신뢰를 박살 냈습니다."

"명심하세요. 지갑을 연 고객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며 통제하려는 오만한 독점 기업은, 결국 대체재의 등장과 함께 시장에서 가장 처참하게 도태될 뿐입니다."

📖 실화 비하인드 스토리 해설 (Expert Column)
EA 경영진이 이토록 반소비자적인 족쇄를 채운 진짜 속내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첫째는 불법복제(Piracy)를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중고 거래를 막고 향후 온갖 쪼개기 유료 DLC(다운로드 콘텐츠)와 소액결제를 유저들에게 강매하기 위한 폐쇄적인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탐욕이었습니다. 물론 게이머들의 거센 반발이 일자, 당시 맥시스의 총괄 매니저였던 루시 브래드쇼(Lucy Bradshaw)와 EA 임원들은 대중 앞에서 뻔뻔한 거짓말을 늘어놓았습니다. "이번 심시티에 적용된 혁신적인 '글래스박스(GlassBox)' 엔진은 도시의 시뮬레이션 연산량이 워낙 방대해서, 일반 개인용 PC의 성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EA의 클라우드 서버가 연산을 분담해 주어야만 작동합니다." 기술적 혁신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교묘한 변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운명의 2013년 3월 5일 발매 당일, EA의 이 오만한 설계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정품 구매자들에게 살아있는 지옥도를 선사하며 역사상 최악의 IT 대참사로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60달러(한화 약 7만 원)에서 최대 80달러에 달하는 거금을 지불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게임을 실행한 유저들이 마주한 것은 아름다운 도시 건설 화면이 아니라, "현재 서버가 혼잡하여 접속할 수 없습니다(Server Busy)"라는 시뻘건 에러 창뿐이었습니다. 초기 서버 구축 비용을 아끼려는 경영진의 얄팍한 원가 절감 마인드 탓에, 발매 첫날 몰려든 동시 접속자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한 서버들이 도미노처럼 터져 나간 것입니다. 정품 유저들은 자기 방에서 혼자 게임을 하기 위해 무려 3~4시간의 서버 접속 대기열을 기다려야 했고, 가까스로 접속해서 몇 시간 동안 공들여 지어놓은 도시는 서버 동기화 오류로 인해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사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세계 최대 유통망인 아마존(Amazon)은 소비자들의 거센 환불 요구에 못 이겨 심시티 디지털 다운로드 판에 "서버 문제로 정상적인 작동이 불가능한 제품"이라는 경고문을 붙이고 아예 판매를 일시 중단하는 초유의 조치를 내렸습니다.
더욱 치명적인 블랙 코미디는 그 직후에 벌어졌습니다. EA 경영진이 "클라우드 서버의 고도 연산 없이는 절대 오프라인으로 구동할 수 없다"며 목에 핏대를 세웠던 주장이, 발매 불과 일주일 만에 한 내부 개발자의 폭로와 천재 모더(Modder, 게임 개조 유저)들의 코드 분석에 의해 완벽한 '대국민 사기극'이었음이 만천하에 까발려진 것입니다. 분석 결과, EA의 서버는 복잡한 물리 연산을 분담하기는커녕 그저 세이브 파일을 저장하고 정품 인증(DRM) 여부를 감시하는 감옥 간수 역할만 하고 있었으며, 한 해커가 디버그 모드의 접속 제한 코드 단 몇 줄을 삭제하자 심시티는 인터넷 연결 없이도 개인 PC에서 아무런 렉 없이 완벽하고 쾌적하게 돌아갔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심시티 폭파 사건을 행동경제학과 미시경제학의 관점으로 해부해 보면, 관료주의에 찌든 대기업 임원들이 빠지기 쉬운 두 가지 치명적인 인지적 결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첫 번째는 바로 '왜곡된 손실 회피 편향(Loss Aversion)'과 '가상 손실의 오류'입니다. 대니얼 카너먼의 전망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동일한 크기의 이익에서 느끼는 기쁨보다 손실에서 느끼는 고통을 2배 이상 크게 느낍니다. 기업의 재무 임원들은 "불법복제로 인해 100만 장이 복제되었으니 우리는 6,000만 달러를 손해 봤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하지만 경제학적으로 볼 때 불법복제를 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애초에 60달러를 내고 정품을 구매할 의사나 지불 능력(Willingness to Pay)이 없는 집단입니다. 즉, 복제를 막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1:1의 정품 매출로 전환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임원들은 이 '실재하지 않는 장부상의 가상 손실'을 방어하는 데 눈이 멀어, 정작 자신들의 월급을 챙겨주는 가장 소중한 자산인 '돈을 지불한 충성 고객의 효용과 신뢰'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본말전도의 우를 범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정품 소비자에 대한 역차별(Asymmetric Punishment)'이 부른 '심리적 저항(Psychological Reactance)'입니다. 과도한 복제 방지 기술(DRM)은 역설적으로 해적판 유저가 아닌 정품 유저만을 고문하는 도구가 됩니다. 해커들은 결국 보안을 뚫어내어 서버 점검도, 대기열도 없는 쾌적한 오프라인 환경에서 무료로 게임을 즐기는 반면, 성실하게 제값을 지불한 정품 소비자만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상시 감시와 서버 오류의 고통을 독박 쓰게 됩니다. 지불한 가격 대비 효용이 마이너스로 추락하자 소비자들은 거센 분노를 터뜨렸고, 그해 EA는 미국의 소비자 단체 투표에서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같은 악덕 금융사들을 모두 제치고 2년 연속 '미국 최악의 기업(Worst Company in America)'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황금 똥 트로피를 거머쥐게 됩니다.
이 오만한 독점 기업의 폭주가 맞이한 거시적인 결말은 자본주의 시장의 서늘한 인과응보 그 자체였습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EA가 발매 1년 만인 2014년 3월, 자신들의 거짓말을 시인하며 슬그머니 '오프라인 싱글 플레이 패치'를 내놓았지만, 이미 대중의 신뢰는 완전히 재가 된 뒤였습니다. 심시티 리부트의 처참한 실패로 인해, 25년간 시뮬레이션 게임의 역사를 써 내려갔던 전설적인 개발사 맥시스(Maxis)의 본가 에머리빌 스튜디오는 2015년 3월 EA에 의해 영구 폐쇄(공중분해)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같은 달인 2015년 3월, 핀란드의 직원이 고작 13명뿐인 영세한 인디 개발사 '콜로설 오더(Colossal Order)'가 심시티의 몰락을 보며 절치부심하여 만든 대체재 '시티즈: 스카이라인(Cities: Skylines)'을 세상에 출시합니다. 이 게임은 출시 당시부터 '완벽한 오프라인 플레이 지원', '심시티보다 9배 넓은 맵 크기', '유저 모드의 무제한 허용'이라는, 심시티 유저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를 전면으로 내세웠고, 단숨에 수천만 장을 팔아치우며 도시 건설 게임 시장의 왕좌를 완벽하게 찬탈해 버렸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지갑을 열어준 선량한 소비자를 '잠재적 도둑놈'으로 취급하며 통제와 불편함을 강요하는 순간 그 제국의 균열은 시작됩니다. 고객의 불편함을 담보로 기업의 관리 편의를 추구하는 얄팍한 꼼수는 결코 혁신적인 보안 기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경쟁자에게 스스로 안방의 왕좌를 갖다 바치고 브랜드의 수명을 가장 확실하게 단축시키는 자본주의적 자살 버튼일 뿐이라는 사실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심시티의 무덤은 오늘날까지도 묵직하게 웅변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