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기울어진 운동장] '피글리 위글리' 공매도 전쟁, 룰을 바꾸는 기득권 앞에 무너진 혁신가의 비극

대중은 자본주의가 매우 공정하고 차가운 이성의 지배를 받는 링이라고 착각합니다. "시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뛰어난 혁신과 투지는 결국 보상을 받는다"라는 식의 나이브한 자기 계발서 문구들이 매일 쏟아집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껍질을 한 꺼풀만 벗겨내면, 그곳은 공정한 링이 아니라 철저히 월스트리트 엘리트들이 자신들을 위해 룰을 세팅해 놓은 폐쇄적인 사냥터에 불과하다는 끔찍한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1923년, 세계 최초의 셀프서비스 마트 '피글리 위글리(Piggly Wiggly)'의 창업자 클라렌스 손더스(Clarence Saunders)가 겪은 파산 사태는, 아웃사이더가 합법적인 룰 안에서 기득권을 완벽하게 굴복시켰을 때 기득권이 어떻게 '룰 자체를 파괴하며' 복수하는지를 보여주는 경제사 최악의 흑역사이자 팩트 폭격의 교보재입니다.

(1920년대 초 미국. 세계 최초로 고객이 직접 물건을 고르는 혁신적인 셀프서비스 마트 '피글리 위글리'를 창업해 대성공을 거둔 클라렌스 손더스가 당당하게 서 있다.)

"내 혁신이 세상을 바꿨다. 월스트리트 놈들도 내 발밑에 기어오게 만들겠어!"

(뉴욕 증권거래소(NYSE) 인근의 어두운 비밀 클럽. 시가를 피우며 탐욕스럽게 웃고 있는 월스트리트의 뚱뚱한 기득권 공매도 세력들.)

"시골뜨기가 선을 넘는군. 공매도 폭탄으로 뼈까지 발라 먹자고."

(공매도 공격으로 주가가 폭락하자, 분노에 찬 손더스가 전 재산과 엄청난 은행 빚을 끌어모아 자기 회사 주식을 모조리 사들이기(코너링) 시작한다.)

"가짜 뉴스로 내 피땀을 훔쳐? 빚을 내서라도 시장의 주식을 싹 다 쓸어 담아!!"

(손더스의 전략이 적중했다!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의 98%를 독점(숏 스퀴즈)하자 주가가 폭등하고, 갚을 주식이 없어진 월가 세력들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른다.)

"주식이 없어!! 저 미친놈이 유통 물량을 전부 잠가버렸어!!"

(파산 위기에 몰린 월가 엘리트들이 거래소 수뇌부에게 다가가 은밀하게 귓속말을 한다. 자본주의의 더러운 뒷거래가 이루어지는 순간.)

"우리가 다 죽게 생겼어. 룰을 바꿔. 지금 당장."

(다음 날 아침. 청천벽력 같은 뉴욕증권거래소의 발표. 거래 정지 및 공매도 세력에게 상환 유예를 준다는 소식에 넋이 나간 손더스.)

"이... 이게 무슨 개소리야? 거래소에서 내 주식 거래를 막아버렸다고?"

"자유 시장 경제의 위대한 승리? 참으로 순진한 착각입니다."

"아웃사이더가 천재적인 두뇌로 '게임'에서 이겨버리면, 기득권은 어떻게 할까요?"

"간단합니다. '게임의 룰' 자체를 바꿔버리죠. 심판이 그들 편이거든요."

"자본주의는 공정한 링이 아닙니다. 엘리트들이 쳐놓은 사냥터일 뿐."

📖 실화 비하인드 스토리 해설 (Expert Column)

1916년, 손더스는 점원이 물건을 꺼내주던 기존의 방식을 깨고 고객이 직접 장바구니를 들고 물건을 고르는 혁신적인 마트를 세웠습니다. 피글리 위글리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되었습니다. 그러나 1922년, 프랜차이즈 확장에 약간의 잡음이 생기자 월스트리트의 '곰 사냥꾼(Bear Raiders, 공매도 세력)'들이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들었습니다. 이들은 회사의 펀더멘털이나 혁신적 가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오직 거짓 소문과 막대한 자본력으로 주가를 짓눌러 자신들의 차익을 실현하려는 폭력적인 약탈에 불과했습니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군집 행동(Herd Behavior)'과 극단적인 공포를 조장하여 개인 투자자들의 투매를 유도하는 전형적인 기득권의 악질적 수법이었습니다.

하지만 클라렌스 손더스는 호락호락한 희생양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피땀으로 일군 회사가 월스트리트 투기꾼들의 장난감이 되는 것을 분노로 지켜보며 극단적인 반격을 결심합니다. 그는 전 재산을 걸고 수백만 달러의 은행 빚을 끌어모아 시장에 쏟아지는 피글리 위글리 주식을 미친 듯이 사들였습니다. 그 결과,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의 무려 98%를 손더스 본인이 장악하는 이른바 '시장 구석몰이(Cornering the market)'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는 거시경제학적으로 완벽한 '숏 스퀴즈(Short Squeeze)'를 유발했습니다. 공매도 세력은 빌려서 판 주식을 갚아야 하지만, 시중에 주식의 씨가 말라버렸으니 부르는 게 값이 되었습니다. 39달러였던 주가는 단숨에 124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손더스는 게임의 룰 안에서, 자본의 논리로 공매도 세력의 목줄을 완벽하게 쥐어짠 것입니다. 월가 엘리트들은 모조리 파산 위기에 처했습니다.

여기서 자본주의의 가장 추악하고 서늘한 민낯이 드러납니다. 자유 시장 경제를 부르짖으며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믿으라"던 월스트리트 기득권들은, 정작 자신들이 파산할 위기에 처하자 철저히 '보이는 손'을 동원했습니다. 공매도 세력과 한통속이었던 뉴욕증권거래소(NYSE) 이사회 임원들은 기득권의 붕괴를 막기 위해 시장의 룰을 강제로 바꿔버립니다. 거래소는 돌연 "시장 안정을 위한다"는 핑계로 피글리 위글리의 주식 거래를 전면 정지시켜 버렸고, 설상가상으로 공매도 세력에게는 주식 상환 기한을 무기한 연장해주는 어처구니없는 특혜를 베풀었습니다. 손더스가 쥐고 있던 주식은 순식간에 거래가 불가능한 휴지 조각이 되었고, 막대한 대출 만기를 감당하지 못한 손더스는 결국 파산하고 자신의 회사 경영권마저 빼앗기고 맙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제도주의 경제학(Institutional Economics)의 핵심적인 경고를 던집니다. '포획된 규제(Regulatory Capture)'. 시장을 감시하고 공정함을 유지해야 할 심판(거래소)이 이미 거대 자본(월가)과 한 몸이 되어버린 상태에서는, 어떠한 천재적인 혁신가도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룰을 지키며 싸우는 것은 오직 하층민과 개미들의 의무일 뿐이며, 권력을 쥔 자들은 판돈을 잃을 것 같으면 언제든 체스판을 엎어버립니다. 2021년에 벌어진 '게임스탑(GameStop) 사태' 당시, 로빈후드와 월가 세력들이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 버튼을 뽑아버린 촌극을 기억하십니까? 놀랍게도 100년 전 피글리 위글리 사태와 소름 돋도록 똑같은 데칼코마니입니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게임에서 기득권의 그물망은 언제나 하방 경직성을 띱니다.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공정한 룰'이라는 것이, 실상은 언제든 엘리트들을 구제하기 위해 변형될 수 있는 위선적인 장치에 불과하다는 뼈아픈 진실. 이것이 바로 손더스의 억울한 파산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긴 가장 시니컬하고 잔혹한 팩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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